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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0. 20世 〉25. <부정공>통정대부부호군승가선대부공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공휘방호가장(通政大夫副護軍陞嘉善大夫工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公諱邦浩家狀)
1. 문헌 목록 〉20. 20世 〉27. <부정공>만회공휘재호묘지명(晩悔公諱在浩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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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부정공>향산공휘상효행장(香山公諱尙孝行狀)
香山公諱尙孝行狀 公諱尙孝字德天初諱明浩香山其號也玉川趙氏肇源於高麗檢校大將軍諱璋三傳諱元吉號農隱門下侍中玉川府院君諡忠獻是生瑜典農寺副正入本 朝諱崇文號竹村諡節愍 端廟節臣是生諱哲山號龜川父子騈命立節於公爲十二世祖也曰東觀曰顯敬曰基學曰鎭東高曾若祖禰妣長興任氏冠山郡光世后復煥與公 哲宗庚戌十月十三日生氣稟端雅才藝出倫年甫就學能自勉勵經史子集過目成誦嘗遊奇文簡公之門累被獎詡孝友根天事親志体兼養恨其單孑與三姊妹情愛尤篤前後喪葬幾於傷性而務克遵古禮自警以孝傷孝之戒待宗族接鄕隣各盡其道老成德立爲鄕隣之推重焉 高宗壬戌十一月二十二日卒壽六十三葬于別良面沙器店柳枝山丁坐原配瑞山柳氏桓春女庚戌生戊子卒墓在道沙面仁德案山甲坐育三男三女男曰建鉉述鉉聖鉉女適鄭國朝文誠鉉鄭熙榮孫男淵吾淵佶源應淵玉長房出淵宅淵甲淵宙次房出淵湜淵澈淵冲淵滿淵台季房出噫公以孝友之篤文學經綸之才一無試用於世終焉昧沒於鄕曲識者恨之然子若孫趾美而漸昌天之報施其在斯歟其肖孫淵玉不遠其遠而來請狀德之文辭不獲己撰此如右以竢立言者採擇焉 恩津 宋在晟 撰 향산공휘상효행장(香山公諱尙孝行狀) 공의 휘는 상효요 자는 덕천(德天)이며 초휘는 명호(明浩) 호 향산(香山)이다。 옥천조씨는 고려 검교대장군 휘 장(璋)을 시조로 三전하여 원길(元吉)의 호는 농은으로 문하시중 옥천 부원군에 시호는 충헌이며、 생휘 유(瑜)는 전농시 부정이고 조선에 들어와 휘 숭문(崇文)의 호는 죽촌이요 시호는 절민으로 단종 때 절신(節臣)이며 생휘 철산(哲山)의 호는 귀천으로 부자가 같이 생명을 바쳐 절의를 세웠으니 공의 十二세 조이다。 동관(東觀)·현경(顯敬)·기학(基學)·진동(鎭東)은 고조·증조 및 조·고이며 비는 장흥(長興) 임씨(任氏) 관산군(冠山郡) 광세(光世) 후 복환(復煥)의 따님이다。 공이 철종(哲宗) 경술년(一八五○) 十월 十三일에 출생하였는데 기품이 단아하고 재예가 출중하여 十二세에 비로소 학문을 배워 스스로 힘써 연구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을 한번 보면 능히 외고 일찍 문간공(文簡公) 기 정진(奇正鎭) 문하에 놀며 여러번 큰 칭찬을 받았다。 효우 근천하여 어버이 섬기며 뜻과 몸을 겸하여 기르고 항상 그 혈혈단신임을 한하여 三자매로 더불어 정과 사랑이 더욱 돈독하고 전후 상에 거의 운명할 것 같았으나 힘써 고례를 따르고 스스로 효도로써 효도를 상할까 경계하였다。 겨레와 이웃을 대할 때 각각 그 도리를 다하고 노성한 덕을 세우니 향방의 추능한 바되었다。 고종(高宗) 임술년 十一월 二十二일에 향년 六十三세로 별세하니 別良面 沙器店 柳枝山 丁坐原에 안장하였다。 배는 瑞山柳氏 桓春의 딸인데 경술생으로 무자년에 죽어 묘소는 道沙面 仁德 案山 甲坐에 있다。 남은 건현(建鉉)·술현(述鉉)·성현(聖鉉)이요、 딸은 정국조(鄭國朝)·문성현(文誠鉉)·정희영(鄭熙榮)의 처며 손자 연오(淵吾)·연길(淵佶)·원응(源應)·연옥(淵玉)은 큰 아들 소생이요、 연택(淵宅)·연갑(淵甲)·연주(淵宙)는 둘째아들 소생이며 연식(淵湜)·연철(淵澈)·연충(淵冲)·연만(淵滿)·연태(淵台)는 막내아들 소생이다。 아! 공이 효우 독실한 행의와 문장 경륜의 재예로서 한번 세상에 시험하여 쓰이지 못하고 시골에 묻혀 버렸으니 아는 사람이 한하였으나 그러나 자손이 아룸다운 것을 이어 점차 창성하였으니 하늘의 보시가 이에 있는 것인가。 그 어진 손자 연옥(淵玉)이 먼곳을 멀다 않하고 찾아와서 장덕의 문자를 청하므로 사절하다가 부득이 하여 이상과 같이 가려서 말을 바로 한자의 채택을 기다리기로 한다。 은진(恩津) 송재성(宋在晟)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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